챕터도 나뉘어 있지 않은 책이지만 절반쯤 읽었으니 제멋대로 상편으로 분류해봅니다.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은 스스로를 나 자신도 트친도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먼 옛날 미망시 운영을 할 무렵에 홍대의 북카페(여기서는 서점을 겸하는 카페라는 의미)에 한나절 죽치러 들렀다가 언젠간 읽어야지 하며 파과 양장본을 사들였는데, 그 책을 대강 1년 3개월 지난 오늘 읽게 될 거라고는 과거의 나도 생각하지 못 했을 겁니다. 어쨌든 미리 사두니 읽고 싶을 때 편하게 읽고 좋네요. 책장에 쌓여 있는 안 읽은 책 183948921권도 이 속도라면 제6대멸종이 도래하기 전에 모두 해치울 수 있겠습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책은 읽어본 것이 별로 없는데, 그 유명한 위저드 베이커리도 안 읽어봤습니다. 제목이 취향이 아니어서요. 꼭 서양 소설을 번역한 것 같은 제목이어서, 작가 이름이 구병모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제 안에서 한국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어릴 때 대체 뭐 읽고 살았나 되짚어 보면 로빈슨 크루소, 이방인, 일렉트릭 유니버스, E=mc^2 같은 책만 떠오르네요. 그러고 보면 남들 한창 소설 읽을 무렵에 소설보다는 과학 교양서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이 더욱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파과는... 굳이 취향이라고 말하는 게 번거롭게 생각될 정도로 좋아요. 첫 장의 섬세하고 회화적인 전경 묘사는 느리게 돌아가는 영사기 속 필름처럼 세밀하게 눈에 감기는 점도 좋지만, 오랜만에 읽는 한국 소설이라 그런지 익숙한 서울 냄새가 나서 친근하기까지 합니다. 이주 전엔가 버스타고 한강을 건너서 삼각지 부근에서 보았던 탁한 어스름의 하늘색을, 연구실 동기가 서울 그레이라고 칭했었는데 그 색깔이 꼭 어울려요. 차분하고 미지근하고, 다소 탈력감에 젖어있는. 표지는 화사한 코랄핑크와 살몬의 그라데이션이지만요.
절반 즈음 읽다보니 다른 여성 등장인물은 없는 걸까 궁금해지는데, 남은 절반에서 제 가슴을 불살라줄 레즈 착즙거리가 등장해줄까요? 별로 기대는 안되지만 다음 주에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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